[클로라일] 짧은글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 또 옷이 바뀌었다. 샤워실에서 나왔으면 젖은 머리를 말릴 법도 한데 저 괴상한 탈은 언제나 빼먹지 않고 쓴다.
"누님 또 결계석 비우고 씻었어요?"
"허구한 날 결계석 비우고 싸돌아다니는 네가 할 말이야?"
"에이~ 전 결계석 떠나서 씻진 않아요."
"좀 씻지 그래. 그러다 머리 빠진다."
아, 방금 말은 좀 가슴 아팠다. 아무리 그래도 탈모라니 저주도 저런 저주가 없다. 예쁘고 순수하던 라일라 헤마와티는 이제 볼 수 없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고 말았다.
"그보다 누..."
"신관이라는 놈이 꽤나 한가한가보군."
라일라가 나온 곳에서 어김없이 같이 나오는 꼬맹이가 말을 끊었다. 또 저 녀석과 욕조에 들어갔던 것이구나 생각하니 심장부터 울혈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찬드라님도 같이 계셨군요."
"불만이냐 하등한 놈."
"그럴 리가요. 근데 찬드라님은 아직도 혼자 못 씻으시나봐요."
"오? 죽으면 지옥 가는 건 이미 확정이라 눈에 뵈는 게 없나보군?"
"그만 하시죠. 추합니다."
"뭐? 추ㅎ... 야 라일라!"
쓰고 있는 탈의 구멍 너머로 그녀의 눈초리가 박혔다. 언제부터 그녀는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실실 웃는 나는 진짜 웃음을 잃고, 웃음이 사라진 그녀는 나에게도 얼굴을 감췄다.
"찬드라님. 아그니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때마침 다급하게 온 전령이 그 꼴보기 싫은 면상을 찾고 있었다.
"그 자식은 할 말 있으면 지가 올 것이지 왜 오라가라야?"
찬드라가 먼저 사라진 복도에 둘만이 남았다. 한숨 한 번이 그녀가 내게 주는 남은 인사였다. 흘낏 시선 하나 더 주지 않고 라일라는 그녀의 신이 가 있을 영접실로 발을 옮겼다.
오랜만에 감정이 앞섰다. 잡힌 손을 보는 그녀의 시선이 탈에 가려진 표정이 어떤지 알려주었다.
"왜? 뭐 할 말 있어?"
"한 욕조까지 쓰게 하는 건 신이라도 월권 아니에요?"
"월권이면? 그게 너한테 중요한 문제라곤 생각 안 되는데."
"마음에 안 들어."
"너 나한테 지분이라도 있어?"
"자기 스승 죽인 놈과 혼욕이라니 언제부터 그렇게 보살이었어? 나한테는 그리도 냉정하면서."
"클로드 유이.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적당히 해 둬."
퍽. 그 어둠의 신관이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잘도 밀쳐진다. 벽과 밀착된 그녀의 탈을 벗긴 채 드러난 얼굴을 훑는다. 무표정에는 약간의 분노는 있었으나 일말의 당혹감이 없었다.
"뭐하자는 거야?"
"왜? 저 자식한테는 다 보여주고 내겐 이제 그 얼굴 하나 못 보여줘?"
"......."
"당신에게 위험이 닥치면 찬드라는 얼마만에 올까?"
"지금이 내가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코앞에 그녀의 입술이 있다. 밀착한 몸에서 방금까지 다른 자와 함께한 비누향이 풍겨와 아찔함을 더했다.
"그럼, 내가 위험한 상황인가?"
라일라의 입술을 탐했다. 어쩌면 지금 바로 죽을 수도 있는 행위에도 죽음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1분쯤의 시간이 지나 떨어졌다. 마음이 죽어버린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다행히 죽이진 않네요 누님."
"......."
대답 하나 없이 라일라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답지 않게 평범한 여자처럼 따귀라도 올려붙이는가 싶던 그녀의 손이 내 뺨을 스쳤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무표정한 그녀의 눈이 조금은 그윽해보였다. 아주 찰나로 느껴진 순간이 지나 손을 떨군 그녀가 다시 영접실을 향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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