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칭 +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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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일 월요일 + 가정집
오후 여덟 시 +흐리다.
CD 인사이드에서 새로 올라온 글을 보고 있는 동안, 동영상의 다운로드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출력된다. 바로 사흘 전에 나온 하타노 유이의 신작들이다! 얼마 전에 일본에 대지진이 났다고 하던데, 그녀가 안 뒤져서 정말 다행이다. 쓸데없는 잉간들은 다 뒤져도 되지만 사랑스러운 그녀는 무사해야하지.
슬슬 쳐볼까나. 집 분위기를 확인해본다. 짜증나게도 내 방의 문은 자물쇠식이 아니라 미닫이식이다. 딸 한 번 치려고 해도 집에 사람이 있으면 눈치를 잘 봐야 한다.
우선 아빠는 아직 집에 안 왔고, 엄마는 방 안에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동생 년은 거실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
자 그럼 해볼까나. 스피커 볼륨을 일단 없애고 유이 짱의 동영상을 튼다. 오오, 역시 그녀의 뽀얀 피부는 보고만 있어도 내 뼈가 사골국 속에 있는 것처럼 하얗게 녹아내릴 것만 같아. 입을 헤 벌리고 있을 즈음.
이런 썅. 후배위가 나오는 장면에서 구간 설정을 하려던 참에 동생년이 훌라후프를 내리고 여기로 걸어오는 기척이 난다. 아, 젠장맞을. 할 수 없이 동영상을 끈다. 동생년이 방에 얼굴을 쑥 내밀더니 이어폰을 가져간다.
―야, 그거 이따 쓸 거야.
―어차피 게임하는 데다 쓸 거잖아. 나 노래 들을 거야.
이런 썅년이? 동생년은 문도 닫지 않고 나가버린다. 하타노 유이의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를 듣지 못 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이걸로 만족하기다. 이제야 말로 다시 신작을 감상하려 동영상을 튼다.
별안간 대문의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아빠가 온 건가. 왜 이렇게 빨리 기어들어오는 거야 짜증나게. 어쩔 수 없이 나간다. 딱히 인사를 하고 싶진 않지만, 가만히 있으면 방문을 열어볼 테니까.
방해를 여러 번 받으니 참 성가시다. 아, 답답하다. 이대로 다 잠들 때까지 기다려볼까. 생각을 바꿔 화장실로 간다. 지금 여기서 아쉬운 대로 한 번 치고 나중에 자기 전에 한 번 더 치자. 변기에 앉아서 치는 딸은 뒤끝이 영 흥이 안 나지만. 휴대전화를 키고 하타노 유이의 동영상을 찾는다.
후배위를 할 때 유이의 가슴이 출렁이는 부분을 반복재생 해놓고 열심히 용두질을 한다. 하얀 물이 찍 나옴과 덩달아 나오는 한숨.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온다. 씹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바지와 팬티는 내리고, 아직 덜 잦아든 물건은 허공에 서 있는 채로 신세 한탄이라니.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든다.
이 짓도 처량하고 비참해져서 팬티와 바지를 추슬러 올릴 때.
“어어……?”
나는 눈을 의심하고 만다. ‘내 눈을 의심하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낸 건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앞 쪽에 있는 욕조에서는 ‘내’가 있었다. 아니, 나를 닮은 누군가라고 해야 하나. ‘나’는 여성 유저가 나오는 정모에 갈 때나 입는 청바지와 검정 재킷을 입고 있다. ‘나’는 씩 웃는다. 어쩐지 나보다 이가 훨씬 많은 느낌이다. 사람이 이가 저렇게 많았던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런 것에까지 생각이 간다. 자세히 보니 ‘나’ 머리에 왁스까지 발랐다. 아니, 그보다 ‘나’는 점점 내게로 다가온다. 아니……, 이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보다 뭐야, 이거. 이거 꿈인 건가?
“너……뭐냐? 어? 너 뭐냐고? 씹알…….”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입은 멋대로 열려 춤추고 있다. 아무래도 문을 열고 일단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나’는 웃음을 거두고 달려온다. 아니, 달려온다기보다는 바로 내 눈앞에 ‘내’가 있었다. 가까운 거리여서 달려올 것도 없든지, ‘내가’ 생각보다 민첩하든지 둘 중 하나이겠지만.
“으아아악!”
‘나’는 양 손목을 순식간에 부여잡더니, 나를 다시 변기 위에 앉히려 든다. 우득 거리는 소리가 나고 손에 힘이 안 들어간 걸 보면 뼈가 부러진 모양이다.
“씹알, 이게 뭐…….”
고통 속에서 튀어나온 말을 채 끝맺지 못 하고 주저앉고 만다. 목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고 피가 흘러나오고, 아니 쏟아져 나오고 있다. 뭔가 소리를 내려고 해도 나오지 않는다.
꽝꽝. 문을 부술 듯한 소리. 가족들이 두드리고 있나보다. 목을 부여잡으려 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앞에서는 ‘내’가 씩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입가에는 뻘건게 피어오르는 내 살점이 가득하다. ‘나’는 나보다 잘 생겼나? 어쩐지 뭔가 피부도 깨끗한 것 같고, 눈은 흰자위가 유이 짱의 그것처럼 순백색이다. 핏줄 하나도 없이……. 그보다 나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것만 중얼거리고 있을까……. 왜……?
‘나’는 나를 내버려두더니 문 쪽으로 다가간다. 그놈이 손잡이를 돌리는 것을 보면서 점점 눈에 힘이 빠진다.
< 이렇게 대문자 i로 해주시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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