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문학]밤생전
밤은 134층에 살았다. 곧장 남산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밤은 스토킹만 좋아하고, 그의 처 화련이 길잡이 노릇을 해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화련의 눈이 몹시 아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왜 스토킹만 하고 돈을 벌어오지 못합니까?"
밤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스토킹을 충분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스토킹 하면서 같이 간단한 아르바이트라도 못 하시나요?"
"아르바이트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사람을 고용해서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화련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스토킹이나 하더니 라헬에게 기껏 '어떻게 하겠소?'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에요? 아르바이트도 못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성매매라도 못 하시나요?"
밤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수시로 보던 라헬 사진집을 덮어 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스토킹으로 백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밤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광장으로 나가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134층에서 제일 부자요? 뭐 자하드겠지요?"
자하드가 맞다고 확인해 주는 이가 있어서, 밤이 곧 자하드의 집을 찾아갔다. 밤은 자하드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천억 포인트를 빌려주길 바랍니다."
자하드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천억 포인트를 내주었다. 밤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자하드의 신하들과 공주들이 밤을 보니 거지였다. 바지는 너덜너덜하고, 셔츠는 여기저기 헤져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신발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밤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알지."
그러자 공주들이 저사람은 누구고 왜 천억포인트를 주었는지물었다.
"저놈은 비선별 인원이고 엔류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저놈에게 빌려주지 않으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데 내가 안 빌려주고 어쩌겠느냐?"
밤은 천억포인트를 받자 바로 으리으리한 집과 번쩍거리는 부유선을 샀다. 화련의 반대쪽 눈에 화접공파술을 쏘고 뺨을 때렸다. 문을 열고 휘청거리는 화련의 등을 발로 걷어차 내쫓은 뒤 남는 돈으로 1억 포인트짜리 드론 수백대를 사 24시간 라헬을 감시하고 스토킹하고 쫓아다녔다. 화련은 정말 슬퍼 울고싶었지만 밤에게 화접공파술을 맞아 막힌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