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리뷰-십이국기와 이재명 성남시장
십이국기는 브레이브 스토리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이다.
좋아하는 이유는 필력이나 이야기의 흡입력 등 여러 개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시원시원함이다.
책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나, 사고들은 독자들이 원하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통쾌하고 시원한 방법으로 해결되곤 한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막막할 때 책을 보면서 대리 만족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의 행보를 보면서 십이국기 생각이 무척이나 났다.
그가 박근혜 정권을 대하는 사이다스러운 발언들이나, 마치 드라마 주인공처럼 폭발적인 지지율을 끌어 모으고 있는 점 등에서 말이다.
너무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라(물론 원래부터 인기가 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처럼 유명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어찌됐건 성남시를 살기 좋은 도시로 바꾼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갑작스런 인기나 행보에 대해서 크게 의구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어떤 글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그 글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갑작스런 인기에 대한 글로, 최근 가천대 비하 발언과 더불어서 그를 비판하는 글이었다. 즉, 그의 기존 지지율은 성남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지만, 근래에 얻은 지지율은 그의 능력이 아닌, 박근혜 정권을 향한 사이다스러운 발언을 통해 얻은 지지율이라는 것이었다.
꽤나 비약이 심하고, 단정 짓는 것이 심한 글이라 걸러 들을 필요는 있었지만 그의 갑작스런 인기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생긴 그의 지지자 중에는 분명 그의 시원시원한 행보가 마음에 들어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어찌됐건 우리는 부정부패나 비리와 싸울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인재를 원하니까.
그런데 십이국기는 사뭇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십이국기는, 1995년부터 연재된 오노 후유미의 소설로, 말 그대로 12개의 가상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2000년대 초반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로, ‘만약 훌륭한 왕(은하영웅전설의 라인하르트라던가)이 죽지 않고 나라를 계속 통치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십이국기의 각 12개의 나라는 1명의 왕에 의해 통치되며, 각 왕은 하늘이 ‘기린’이라는 재상을 통해 정해준다.
그렇게 정해진 왕은 실도, 즉 길을, 민심을 잃을 때까지 계속 죽지도 늙지도 않고 나라를 통치한다.
만약 왕이 길을 잃으면, 왕은 죽게 되고, 다음 왕이 정해질 때까지 나라는 황폐화되기 시작한다.
요마가 나오고,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논밭은 망가지게 된다.
그런 12개의 나라 중에 안이라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선대 왕에 의해 나라가 한번 엎어지고, 그 왕이 죽고 난 뒤로 14년 동안이나 왕이 없던 탓에 나라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새로 등극한 왕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면서 혀를 내둘렀을까.
그래서일까. 새로 등극한 왕이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부정부패 척결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는 일이었다.
분명 부패한 관리들의 재산을 몰수하면 좀 더 쉽게 나라를 재건할 테지만,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백성을 살려야 한다며 처벌을 미룬다.
땅이 비로소 녹색으로 바뀌고, 20년이 지나서야 그는 국고를 빼돌리고 뒤에서 나라를 갉아먹고 있던 자들을 처벌한다.
한편, 대라는 나라도 있었다. 이 나라 역시 신왕이 등극했을 때에는 안과 비슷한 형편이었다. 그런데 대의 신왕은 안의 신왕과 달랐다. 그는 군인출신이었고, 군인으로 선왕 밑에서 근무할 때에도 아래위로 따르는 사람이 많은, 소위 말하는 천재, 하늘이 내려준 인재였다.
그는 시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대의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바로 ‘겨울사냥’을 준비한다.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베푸는 일을 말이다.
그러나, 안의 왕은 그 뒤로도 500년이 넘도록 치세가 이어지는 나라를 이룩하지만, 대의 왕은 ‘겨울사냥’을 나서자마자 최측근에게 배신을 당해 행방불명이 돼버리고 만다.
사실 십이국기를 여러 번 읽었었지만, 그래도 나름 비중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온 대의 왕이 갑자기 그렇게 사라지게 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자들과 줄곧 함께 해온 대의 왕은 올곧았고, 또 도리를 아는 자였다. 그가 다스리게 되는 나라는 분명 치세가 오래도록 이어져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번 사태와 더불어 책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안’에서 부패한 관리들이 신왕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백성들의 삶이 막 안정화되는 시기였다. 그래서, 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백성들은 궁으로 달려가 같이 싸우겠노라 말한다. 기껏 살만해졌는데 다시 또 싸우냐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젊은이들은 이렇게 대꾸한다.
“난 알고 있어요. 밤중에 어른들이 와서, 내 옆에서 자고 있던 동생을 데려갔어. 그리고 우물에 던져 버렸지. 그런 짓을 한 어른들이 지금도 태평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걸 난 알고 있어. 그건 전부 나라가 황폐했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씻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고 있다는 걸 말이야.
이대로 전란이 일어나서 왕이 쓰러지면, 나의 아이도 누군가가 우물에 던져 버릴 거야. 만약 왕이 장래 이 아이를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지금 나는 왕을 위해서 죽어도 좋아요.”
하지만, ‘대’는 아니었다. 대의 왕이 겨울사냥에 나섰을 때, 너무 성급하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냐고 불안감을 가지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를 위해 싸워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북쪽에 위치한 ‘대’는 겨울이 혹독하게 추우니까. 안 그래도 나라가 황폐해서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 상황에서, 겨울을 맞이한 대의 백성들 중 왕을 위해 나서줄 사람은 없었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누가 누굴 위해 싸워준단 말인가.
아까 읽었다는 이재명 성남시장에 관한 글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유는, 내 삶을 나아주게 만들어주고, 나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지하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혼내줄 그런 사람을 진정으로 지지해야 할 정치인과 착각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거리에 나서는 230만의 시민들이 그저 누군가를 혼내주기 위해 나서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먹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서는 것이다.
다시 십이국기로 돌아가서, 대와 안 말고도 ‘재’라는 나라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이 나라의 이야기의 경우는 조금 흥미로운데, 왕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과하게 부여하고, 노역을 시키는 등 너무 못살게 굴자, 백성들 중에서도 공부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왕에게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요구를 한다.
결국 길을 잃은 왕은 죽게 되고, 앞장서서 왕의 하야를 요구했던 자가 ‘재’의 다음 왕으로써 하늘의 선택을 받게 된다.
그렇게 오른 ‘재’의 신왕은, 선왕의 실수에 답습하지 않기 위해 세금을 줄이고, 노역을 없애지만 결국 국고는 곤궁해져서 국가가 백성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재’는 선왕 시절보다 더 못사는 나라가 되고, 결국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체 게바라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사람을 책망하는 일은 쉽지만, 그 일을 해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책망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사람이 잘못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뿐이다.
비단 이재명 성남시장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박근혜 정권에 대한 사이다 발언을 듣곤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사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내려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사이다스러운 발언이 사이다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원시원한 말만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
당장 이 사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이, 또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가 듣는 그 모든 사이다 발언들,청문회는 그저 ‘십이국기’처럼 판타지 소설 속 사이다에 불과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귀를 계속 열어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