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관한 소묘 - 문덕수
선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
뒤쫓는다.
어둠 속에서 빗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이
뒤쫓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 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 위에
동그란 우주(宇宙)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