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새의 방 - 김명인
칼새의 방
- 김명인
십여 년 전인가, 나는
상봉동의 바위산에 올라가
닥지닥지 눌러앉은 서울의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그때 집이 없었으므로
눈 높이까지 차오른 저 집들의 어디에
나도 마음 누일 방 한 칸 있었으면 했다, 가솔들을 끌고몇 개월마다의 이사와 가파르던 숨결
그리고 십 년 후에 나는 내 집 근처 약수터 야산 밑으로이삿짐에 얹혀 트럭에 실려가는
한 聖가족을 본다, 저기 누군가
아직도 이 도시에서는 모세처럼
식솔들을 끌고 해마다 출애굽하는 가장들이 있는 것이다
어디에 있을 방 한칸을 찾아
절박했지만, 그러나 방 한 칸 없어 절망조차 없던그때는 마른 풀 가득한 빈 들의 시절이었을까
인생은 그런 것인가, 방 한 칸의 희망을 완성하고저렇게 나이 들고 무료하면 하릴없이
여기 와서 빈 물통 채우면서
나도 고함이나 한번 크게 질러보는 것인가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라고 우기던
겨우 그런 나이를 지나서
저 아래 빈 방인 저의 무덤 곁으로
다시 언덕을 내려가는 것일까
어차피 빈 방이 없어도 저기 저 바위가 제 식탁이라는 듯
모이를 줍고 있는 칼새 한 마리
누가 뿌린 것도 아닌데 제법 만족한 식사를 끝내고
칼새는 바위에 부벼 제 부릴 닦으며 즐겁게 재잘거린다
저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칼새 같지가 않다, 득의한제왕처럼
날개짓도 한번 크게 쳐보이면서
아직 집이 없으므로 절망의 둥지는 틀지 않고칼새는 다만 자유롭게 서성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