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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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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116 | 작성일 2021-02-20 02: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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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대략 15년 전에 겪은 일입니다.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두렵습니다.

그 당시 저희 가족은 경기도 광명 소재의 주공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동네에 몇 동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주공 아파트들은 복도식아파트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좌우로 긴 복도가 있고 그 복도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양새였습니다. 저희 집은 3층 7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왼쪽 복도 들어 첫 번째 집이었습니다.

저희 집의 구조는 직사각형으로 현관문을 열면 바로 오른쪽에 제 방이 있었고, 제 방을 지나면 거실 겸 부엌, 다시 거길 지나면 현관문 맞은편에 미닫이문이 달린 안방이 있었습니다. 거실 겸 부엌에는 왼편으로 싱크대가 있고 맞은편인 오른쪽 벽에 식탁을 벽에 붙여놓았었지요. 식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있는 문은 세탁실이었고 왼편 문은 화장실이었습니다. 저희 집 식구들은 좁은 집에 살다보니 갑갑해서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두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미술대학 지망생이라 수능시험을 마치고, 실기 시험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꼭두새벽에 미술학원에 가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다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오곤 했지요. 그러니 당연히 피곤에 찌든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기야 건강하고 기력도 좋았다면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났었겠습니까.

그날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음날을 준비하며 물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정리해두지 않으면, 다음날 그림 그릴 때 시간을 많이 뺏기거든요. 식구들은 모두 자러가고, 저 혼자 식탁에 물감들을 펼쳐 놓은 채 굳어져 가는 건 없는지, 색은 아직 양호한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건 12시 30여분, 다시 고개를 물감 쪽으로 돌려 계속하려는데 제 왼편에 있는 화장실 문 쪽에서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사람의 눈은 딱히 그쪽을 보지 않아도 그 주변의 것들이 다 보이잖아요. 곁눈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암튼 전 식탁 위를 보고 있었는데, 화장실 문 쪽이 같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문 발치에, 도저히 사람이 서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야말로 바닥에, 손이 하나 살며시 나오더니 벽을 잡는 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조금 위쪽에 다른 손이 하나 나오더니 다시 벽을 잡더군요. 그리곤 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얼굴을 벽 뒤에서 쏙 내밀더니 저를 똑바로 올려보았습니다. 그 눈빛이 마치 '이 집에는 누가 사나'하고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너무 무서우면 사람이 이상해지는지,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곤 화장실 문 앞을 그대로 지나쳐 안방으로 슬라이딩. 동생이 자는 자리(언니가 고3이라고 방해될까 부모님과 안방에서 자고 있었음)를 지나 엄마 아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이불을 머리 꼭대기 까지 쓰고, 정신을 잃은 건지 잠이 든 건지 그 다음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 이상한 건 그 다음날. 그 다음날 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감이 어질러져 있었으면 간밤의 일이 기억이 났을 텐데, 일찍 일어나신 엄마가 식탁위에 어질러진 물감들을 이미 치워놓으셨고 저는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 일과를 다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당시 저희 엄마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셨는데, 성당에서는 신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아파트 동별로 모임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임에 다녀오신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207호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신부님을 붙잡고는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하더라는 겁니다. 집안에 귀신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자길 못살게 군다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침대 머리맡에 와서 소곤대고, 곡을 하며 울기도 하고, 자다가 눈을 뜨면 코앞까지 와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고. 아주 무서워서 못살겠다고 하시더라는 겁니다. 엄마는 신자가 그렇게 믿음이 없어서 되겠냐고 혀를 차시는데.

그 순간……. 일 년여 가까이 있고 있었던 기억이 한순간에 밀려와 버렸습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라는 게 무언지 알겠더군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은 제가 엄마께 말했습니다.

"엄마, 그거 여자라지?"
"어."
"엄마, 그거 생머리에 단발보다 조금 길고, 얼굴이 하얗고 입술이 유난히 빨간. 몇 살쯤 보이는 여자 아냐?"
"어. 너 그걸 어떻게 아냐……."
"엄마. 그거 나도 본거 같아…….여기 집에서."

그 순간 엄마의 충격 받으신 모습이란. 이야기인즉, 그 여자가 밤에 화장실에서 나와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는데……. 그 집은 207호 우리 집은 307호. 같은 라인이라 화장실의 위치는 같습니다. 즉, 우리 화장실 아래는 그 집 화장실. 제가 봤던 화장실 문 발치. 그 집에서 그대로 올라온 거라면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집과 저희 집만이 아니라 위층인 408호 사는 아주머니도 그 여자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계셨다는 사실. 그 아주머니도 같은 성당 신자로,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여자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따라붙는답니다. 집에 뛰어들어 현관문을 닫아도 그대로 따라 들어온다는데……. 무서워서 본 척도 못하겠고, 돌아보지도 못하겠고. 그저 기도문만 주문처럼 외우신다는 데…….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녀를 본 느낌은……. 사람을 보면, 만지면 만져질 것 같은. 실체가 있는 느낌이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눈, 코, 입 얼굴생김새가 또렷이 보이기는 하지만, 만지면 그저 손이 쑥 통과할 것 같은……. 반투명이랄까. 실체가 만져지지 않을 느낌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은 이미 이사날짜를 잡아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멀리도 아니고 같은 동 8층 2호……. 그나마 끝에서 끝에 가까운 거리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TV가 혼자 꺼지고 켜지거나, 가스불이 갑자기 꺼지는 등의 현상이 있었습니다. 폴터가이스트라고 하죠. 좀 섬뜩하고 무섭긴 했지만 제가 둔했던 건지 그냥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어쩌면 그저 오작동이라고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할 때까지 머물면서 직접 그녀를 다시 본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아파트 근처는 얼씬도 하기 싫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207호 아주머니는 이사 나갈 때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고, 408호 아저씨는 갑작스레 암을 얻어 돌아가셨고, 저희 집은 끊이지 않는 가정불화에. 겨우 평수 넓혀서 이사 왔건만, 부모님 하시는 일이 잘 안되어 결국 망하다 시피해서 아주 작은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겨우 1~2년 안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그 날일을 묘사하는 부분하면서 무서웠습니다. 15년이나 흘렀는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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