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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피니
최근수정 2021-06-06 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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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여성
생일 : 
키/몸무게 : 

"쾅! 펑!"

한차례의 폭발음이 깊이 잠들어 있던 도시국가 카셀을 깨웠다. 외곽에 위치한 베이더군 공장은 그대로 혼란에 빠져들었다. 자욱하게 깔린 짙은 연기와 함께 불바다가 밤하늘을 저녁 노을처럼 물들였다. 폭발을 일으킨 케피니는 아무 감정없이 자신의 걸작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그림자 속에서 붉은 인영이 나타나더니 찰거머리처럼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반년 전, 미아타에서 유학 후 돌아온 케피니는 가슴 가득 동경을 안고 부모님이 일하는 베이더 연구 센터에 들어갔다. 그녀는 미아타에서 가져온 첫 프로토타입과 그와 매칭되는 외골격 동력 기술을 활용하여 OICW 프로젝트에서 줄곧 걸림돌이 되었던 동력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량 생산의 기반을 만들었다. 연구센터에 예속된 베이더 사는 연방 최대 규모의 군수업체로 그들의 무기 생산과 판매는 모두 연방 법율의 엄격한 규제를 받았고 위험도가 높은 무기는 정의를 위한 합법적인 전쟁에만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 숨어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규율도 무시하고 짓밟을 수 있었다.

케피니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극단적인 종족주의 조진인 '그림자 손'이 이 OICW 프로젝트의 배후 지지자이고 그녀의 부모 역시 해당 조직의 일원일 줄이야. 그들이 전력을 다해 OICW 프로젝트 연구를 추진한 건 종족 말살 전쟁에 사용될 개인 부대를 무장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케피니가 유학했던 미아타였다. 공업 폐허로 전락한 미아타에는 여전히 모렌 등 솜씨 좋은 기술자와 완벽한 생산 라인이 있었고, 이것들은 모두 그림자 손이 당장 필요로 하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진상을 알게 된 케피니는 부모에게 연금되고 말았다. 부모와 핏줄이라는 족쇄만 없었다면, 머릿속에 있는 설계도가 가치가 없었다면 속내를 감추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분명 거리낌없이 자신을 죽여 입을 막았을 거라고 케피니는 생각했다. 하지만 연금되었다 해도 뭔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미아타 유학 시절 케피니의 선택 과목 중에는 자물쇠 따기와 격투가 있었다. 그러나 케피니가 제일 잘 다루는 건 역시 총포류였다. 그녀가 방금 했던 그런 것처럼 말이다.

직원 신분을 이용해 생산 센터에 잠입한 그녀는 프로토 타입을 작동시켜 모조리 파괴하고 완성품 모델과 조립 부품을 몽땅 불태웠다. 보안관에게 신고하고 기나긴 조사와 입증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이것이 그들의 음모를 저지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물론 이런 방법은 후유증 역시 컸다. 연방법을 어긴 건 차치하고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그녀를 뒤쫓고 있는 붉은 인영이 바로 지금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고개를 돌려볼 것도 없이 케피니는 느낄 수 있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기괴하고 음험한 저 존재가 지금 계속해서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케피니는 자신이 지금 무의식적으로 미아타 쪽으로 향하는 중이라는 걸 아직 깨닫지 못했다. 부모와 척을 지게 된 그녀의 비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는 건 몇 년간 함께 생활해 온 동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그 순간부터 케피니는 자신이 영원히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참을 도망쳤는데 힘들지 않나?"
가벼운 웃음과 함께 붉은 인영이 갑자기 속력을 내더니 케피니의 앞을 가로막았다. 새빨간 긴 머리가 마치 핏빛 폭포 같이 흘러내려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리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선홍빛의 눈동자가 달빛에 비쳐 더욱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케피니를 가장 두렵게 한 건 바로 그녀의 손에 들려진 쇠사슬이었다. 그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꿈틀거렸고 야심한 밤 먹이를 찾으러 나온 독사같아 눈앞의 사람을 더욱 흉흉해 보이게 만들었다. 케피니의 부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림자 손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에이스 킬러 베라스였다.
"나... 날 데려갈 생각은 하지도 마. 여차하면 여기 프로토타입 자폭 장치를 작동시켜 너와 함께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겉으론 강한 척해도 속은 한없이 약한 케피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위스프는 '호의'랍시고 프로토타입에 자폭 장치를 설치해보라고 제안했다가 그녀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위스프가 영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는 쓸모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긴장하지마. 난 널 잡으러 온게 아니야."
베레스는 전혀 상관없다는 투였다.
"난 그냥 대체 어떤 자매분이 나 대신 귀찮은 일을 해결해 줬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뭐?"
케피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베레스는 바로 그림자 손의 일원이었다. 부모에게서 봤던 그 조직의 휘장이 베레스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너에게 빚을 졌으니 목숨은 한 번 살려주지. 이제 서로 빚진 건 없는 거다!"
베레스는 케피니가 조직원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챘다. 퀄렌님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후 또 다른 사람을 보내 개입시켰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케피니의 정체는 뻔했다. 바로 조직의 적이 분명했다. 하지만 베레스는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어쨋든 케피니는 그녀의 귀찮은 일을 해결해주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게 처리해 자신이 증거를 없애야 하는 수고도 덜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별로 개의치않고 방관하는 제 3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 케피니를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다음엔 아마 적으로 만나게 될 거다!"
그러고는 베레스는 손을 흔들며 훌쩍 가버렸다.

베레스가 멀어진 걸 확인한 후 한껏 놀라고 긴장했던 케피니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식은땀으로 등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어쨋든 아직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케피니는 어른들 간에 힘겨루기 같은 건 알지 못했기에 베레스의 몇 마디 말 속에서 그림자 손 내부의 계파간 알력 다툼을 유추해낼 수 없었다. 지금 케피니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집에 가자! 미아타로 돌아가자! 햇살 아래 그늘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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