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네가 어떤 파도가 일지 모르는 호수 속에 갇히게 된다면, 믿어야 하는 건 단 하나다.
그건 너의 항해 실력도... 만 리까지 보는 길잡이 실력도... 동료들 간의 끈적이는 유대감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호수 밑바닥에 스스로를 제물로 삼는 걸 택한다.
그저 어떠한 혼돈과 떨림에도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너의 의지를 믿어야 한다.
고작 호수가 너 따위에 잠잠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 앉는다. 나는 눕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잊어버리고 재차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로 나는 꽃을 깜빡 잊어 버리고 들어간다. 나는 정말 눕는다. 꽃이 또 향기롭다.
보이지 않는 꽃이ㅡ보이지도 않는 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