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믄 니는 하지마라. - 13
"하아... 하아... 김영민, 그런거였어?"
"..."
초승달이 산에 걸린듯한 새벽, 반지하로 만들어진 강의실안에는 불도 켜지지 않아서 바로 앞의 사물도 구분할 수 없었지만 거친 숨소리를 내며 격양된 목소리를 내는 소녀는 몇 발자국 앞에있는 소년의 두 눈을 올려다 보며 똑바로 응시했다. 굉장히 흥분해 있는 소녀와는 달리 소년은 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차분히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가지고 논 기분이 어때? 재밌지? 재밌어 미치겠지!"
"...아니 오해야"
"꺄아아아아악! 그럼!... 그럼 난! 난 누구인데!"
"나도... 아니... 그만하자"
소년은 무신경하게 중얼거렸다. 소년의 말이 떨어지자 구릿빛 피부에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소녀는 털썩 두 무릎을 꿇고 태엽이 풀려가는 인형처럼 삐꺽거리며 천천히, 저물어 가는 태양처럼 아주 천천히 자신의 심장을 꺼내서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피가 후두둑 떨어지는 심장이 무섭지 않았다. 가슴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도 아프지 않았다. 초단위로 들려오는 듯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저 원망스럽다. 저 소년을 박살낼수 있는 두 손이 움직이지 않는게 원망스럽다. 원망스럽다. 저런 놈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이 두 다리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거역할수 없는 소년의 목소리가 불빛에 모여드는 불나방차럼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이끌며 분노와 증오를 갉아먹는다. 역시... 이 목숨은 저 소년의 것일 것이다. 손을 뻗는 소녀의 죽어가는 눈동자에 자신의 모든것을 원하는 소년의 모습이 역광에 비춰져서 악마처럼 검고 옅게 아른거렸다. 그리고 숨이 끓어졌다. 붉은 액체를 뚝뚝 흘리며 손은 뻗은채 죽어있는 소녀의 모습이 끔찍할법 했지만 김영민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야 거기... 너, 다 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