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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일상 - 1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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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707 | 작성일 2013-09-25 07: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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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일상 - 1장 (3)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회 끝,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유랑은 자리로 돌아갔

고, 유랑과 은영의 말을 들은 반 친구들은 탐정이 날라리한테 고백하는 거 아니냐며 수근댔다.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1장. 청풍고등학교의 탐정 (3)

 

 5분 전.

 죽은 망령들이 되살아나는 것 마냥 한두 명씩 몸을 일으킨다. 아직까지는 눈도 풀리고 지

금이 어떤 상황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들 있지만 그런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어난 자들은 이내 주위를 둘러보고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자

들을 일으킨다. 그렇게 결전의 때를 준비한다.

 4분 전.

 아직 준비가 안 된 자들은 늦은 만큼 자신을 몰아세운다. 고개를 흔들거나 뺨을 때리면서

정신을 가다듬는다. 발목을 붙잡을 만한 요인들을 점검하며 시간이 되길 기다린다.

 3분 전.

 정신을 차리고 나서부터, 아마도 그 이전부터 그랬겠지만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창밖

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같이 자연적인 소리는 아니다. 지극히 인위적이고 명확한 목적을

가진 소리가 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소리에,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부분 정신을 잃

었다가 되찾은 상태라서 그 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적다. 하지만 그 소리가 멎는 순간

이 결전의 때라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2분 전.

 몇몇이 입에 고인 침을 삼킨다. 다른 몇몇은 다리를 떨기도 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

한 긴장이 표출되는 것이다. 2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소리가 멎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은 망령 같던 이들은 어느새 눈을 빛내며 앞을 바라본다. 속은 불

안할지언정 겉은 침착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1분 전.

 드디어 소리가 잦아들 기미가 보인다. 각자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자세를 잡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대개 그렇다는 말이다. 정신을 잃지 않았던 극소수는 소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김보라였다. 보라의 오른쪽 어깨가 조금 움직이려 한

순간, 유랑이 그 어깨를 잡았다. 보라가 몸을 돌려 유랑을 보자, 유랑은 고개를 저었다.

 보라는 싱긋 웃더니 다시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유랑이 잡지 않은 왼쪽 어깨를 움직이며

말한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1분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수업은

끝나지 않았다. 점심을 빨리 먹기 위해 준비한 5분이 헛되이 지나갈 위기상황이다. 각자 아

쉬움과 짜증을 조용히 표현한다. 결전의 때를 놓쳐 점심을 늦게 먹을 걸 생각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지 3초도 지나지 않았을 때 보라는 말을 이었다.

 

 “방과 후에 교무실 찾아가도 돼요?”

 

 아쉬움과 짜증이 한줄기 희망으로 변한다. 선생님의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희망은 현실이

됐다. 모두 다시 한 번 자세를 잡는다. 결전의 때에 늦지 않았다.

 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수업은 끝나고, 절반 이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달

렸다.

 종소리가 끝났을 때 교실에는 여자 다섯 명과 남자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 중 여자

셋이 은영과 보라에게 다가온다.

 

 “밥 먹으러 언제 갈래?”

 

 그 중 한 명이 묻고 보라가 답한다.

 

 “평소처럼 가자.”

 

 10분 뒤에 가자는 말이다. 지금 가봤자 엄청난 인파가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볼 뿐이다.

 은영이 대화에 끼어든다.

 

 “난 입맛 없어서 오늘은 안 먹을래.”

 “은영이는 또 다이어트야?”

 “아냐, 정말로 입맛 없어. 아침도 안 먹었는걸.”

 “오늘 점심 엄청 맛있다는데?”

 

 여자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리고 교실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남자,

유랑이 몸을 일으켰다. 유랑은 보라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한다.

 

 “자은영 좀 빌려간다.”

 “응? 은영이?”

 

 보라가 유랑을 본 뒤 은영을 바라본다. 그러자 은영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뭔데 그래? 쉬는 시간에 말하라니깐…….”

 “쉬는 시간은 보는 눈도 많은데다가 너무 짧아.”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시려고 밥도 안 먹고? 차라리 수업 다 끝나고 말하지?”

 “수업 끝나고 네가 학교에 붙어 있으면 그런 방법도 가능하겠지.”

 

 은영이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잡담을 해대던 여자들은 어느새 꿀 먹은 벙어리

가 돼서 둘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은영은 그런 친구들에게 “갔다 올게.”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걸음을 뗐다. 돌아오는 반응

은 전부 어정쩡한 대답뿐이다.

 

 “따라와, 엉터리 탐정 씨.”

 

 은영이 말하자 유랑은 따라간다. 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교실 안은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유랑이가 은영이 좋아해?”

 “유랑이는 겉으로 감정이 드러나질 않다보니까 잘 모르겠어.”

 “마음은 좀 있는 거 같은데?”

 “따라가 볼래?”

 

 대화를 보라가 딱 부러지게 끊는다.

 

 “그런 거 아니래.”

 

 무르익던 이야기가 한 순간에 흩어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흐름을 바꾼다.

 

 “유랑이가 그래?”

 “응. 그런 건 아니래.”

 “보라한테 그렇게 말했으면……. 아니겠네.”

 “에이, 뭐야~.”

 “조금 애매해보이기도 한데…….”

 

 보라가 화제를 전환한다. 점심시간마다 벌어지는 광란의 레이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다들

의기투합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보라가 문을 바라봤지만 이미 사라진 둘이 보일 리 없었다.


                                                 *           *           *


은영은 성큼성큼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밖으로 나가는 문은 잠겼지만 여기까지 오는 사

람도 많지 않으니 사람들 눈은 피할 수 있다.

 은영이 계단 맨 위까지 올라가자마자 뒤로 돌아 말한다.

 

 “말해봐.”

 

 유랑은 한 계단에 두 발을 모두 올려놓으며 그 말에 응한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어디 있었지?”

 “무섭네, 무서워. 말해보라고 했어도 심문조로 말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너무 서투른 거

아니야?”

 “심문조로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야.”

 “아니지. 내용이야 어떻든 말투는 바꿀 수 있잖아?”

 “…….”

 

 낮이지만 주변에 빛이 별로 없어서 어둡다. 침묵이 이어져서 지금 같은 초가을 날씨에도

약간 스산하게 느껴질 만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유랑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난 어제 새벽 한 시에 명암구 거문동에 있었어. 아침에 너도 봤겠지만 기사에 나온 그

사건 현장에 있었지.”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기사에는 덩치 큰 괴한이 사내 두 명에게 상해를 가하고 도주한 걸로 돼있었지만, 그건

피해자들 말이었어.”

 “실제로는 아니었다?”

 “실제로 상해를 입힌 건……. 도둑고양이였어.”

 

 이 한 마디로 유랑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가닥이 잡힌다. 눈치가 빠르다면 몇 단계 건너

뛰어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은영은 자신이 유랑에게 도둑고양이라고 불린 걸 떠올렸다.

 하지만 굳이 그걸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히려 능청스레 이야기를 헛돌게 한다.

 

 “고양이가 칼로 사람을 찔러? 몸 길이 1m짜리 고양이가 이족보행하면서 앞발로 칼이라도

잡았나? 천연기념물이 따로 없네.”

 “말이 고양이라는 거야. 키가 작은 여자였어.”

 “키 작은 여자를 도둑고양이라고 칭하는 발상만큼은 참신하네. 나도 그래서 도둑고양이라

고 불린 거야?”

 

 유랑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에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넌 그 시간에 뭐하고 있었어?”

 

 이 질문은 네가 범인이냐고 추궁하는 말이다. 단지 그걸 친절한 상황 설명과 더불어 ‘도

둑고양이’라는 단어로 돌려서 말한 것뿐이다.

 은영은 두 번째 받는 그 질문을 듣고 미소지었다.

 

 “그 시간에는 자고 있었지.”

 

 대답을 들은 순간 유랑은 눈에 힘을 준다. 반대로 은영은 웃고 있는 탓에 눈이 가늘어졌

다. 둘 사이에 미묘한 눈싸움이 진행되다가 은영이 그대로 쪼그려 앉는다. 그러자 계단에

서있던 유랑과 눈높이가 같아졌다.

 

 “고작 그것 때문에 날 부른 거야?”

 “…….”

 “뭐, 내가 범인일 거라고 생각해서, 아침부터 도둑고양이라고 하면서 시비 걸고?”

 “…….”

 “말 좀 해봐. 엉터리 탐정님.”

 “아니야.”

 

 은영의 미소가 한층 더 짓궂게 변한다.

 

 “뭐가 아니야?”

 “탐정 아니라고.”

 “그럼 뭔데?”

 “사회 암적인 존재들의 적.”

 

 은영이 숨을 약하게 내뱉으며 웃는다. 곧이어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한다.

 

 “진심으로 한 말이야?”

 “어. 적어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하핫, 재밌네. 그러니까 아직은 탐정이 아니지만 나중에는 되고 싶다?”

 “아니, 탐정은 심부름센터 같은 느낌이라서 별로야. 형사가 목표지.”

 “형사라~. 좋지.”

 

 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치마를 털었다. 풀석풀석 소리를 내면서 은영은 건성으로 말

을 잇는다.

 

 “열심히 해봐. 뭐, 사건 범인은 나 아니니까.”

 “네가 범인이야.”

 

 은영의 눈초리가 싸늘해진다.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던 눈과는 다르다.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어?” 이 세상에 키 작은 여자가 한둘이야?“

 “키뿐만이 아니야. 너랑 범인은 똑같이 생겼어.”

 “얼굴이?”

 “아니, 몸매가.”

 “몸매?”

 

 다소 의아하다는 듯 은영이 인상을 지푸린다. 고개도 갸웃거리며 부가적인 설명을 요구했

다. 유랑은 그 요구에 응해 말한다.

 

 “마른 체형에 올곧은 다리, 허벅지는 약간 살집이 있고, 10대 초반이라고 해도 될 만한

무릎 뒤쪽 접히는 살의 탱탱함, 군살 없이 곡선을 그리는 종아리와 대추처럼 둥그렇지만 뒤

쪽이 움푹 들어간 복사뼈, 서있을 때 유난히 두드러지는 아킬레스건, 제모가 덜 된 건지 한

두 개 남아있는 잔털, 엉덩이를 강조하려고 탄생한 듯한 완벽한 골반, 하지만 대충 봐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짝궁뎅이, 눈짐작으로 보면 그 차이는 0.5cm 정도, 이 모든 게 범인과

네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야. 범인은 짧은 바지를 입어서 알 수 있었고, 넌 체육복이랑 교

복 입은 모습을 봤으니 알아.”

 “…….”

 

 전부 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설명을 유랑이 주절거리자 은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설명

이 시작되기 전부터 표정은 안 좋았지만 설명이 끝났음에도 납득했다는 그런 표정이 아니다.

은영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말 다 했냐?”

 “범인이 헐렁한 윗도리를 입어서 상체까지는 비교할 수 없어.”

 “…….”

 

 은영이 잠시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손을 뗀 뒤에 여전히 찌푸린 얼

굴로 유랑을 보며 말했다.

 

 “우와……. 시발 변태새ㄲl.”

 

 은영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며 얼굴에 경멸의 빛이 드리운다. 하지만 유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수사의 일환으로……."

 

 말이 중간에 끊긴다.

 

 "수사의 일환 좋아하시네."

 

 은영은 역으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사람을 대체 어떤 눈으로 보면 그런 게 보여? 내 다리에 잔털 있는 거는 어떻게 봤대?

살의 탄력이라든가 엉덩이 크기라든가 변태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자세히 볼 수 없거든?"

 "모든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진 않아. 우리 반에서 자세히 관찰한 건 너뿐이야."

 "나만?"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악질로 보였으니까."

 "내가?"

 

 유랑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자 은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울기라도 할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처참하게 웃었다. 은영은 다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손을 떼

며 찡그린 얼굴을 활짝 폈다.

 

 "좋아."

 

 은영은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하핫, 온몸 구석구석이 핥아진 거 같아. 정말 기분 더럽네. 김유랑, 지금 나한테 맞아도

할 말 없는 거 알아?"

 

 "그렇겠지."라고 유랑이 답하자마자 은영의 손이 움직였다. 찰싹 하고 살과 살이 힘껏 맞

부딪치는 소리가 계단을 통해 울려 퍼진다.

 유랑은 왼뺨을 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돌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지도 모르지만 유랑은 버텼다. 옆의 난간을 한손으로 잡고 한 발을 아래 계단으로 옮기며

넘어지지 않았다.

 유랑이 다시 은영을 본다. 은영은 미소 지었다.

 

 "이 정도로 참아줄게. 안 피하고 제대로 맞았으니까."

 

 유랑이 꿋꿋이 버티며 따귀를 맞은 것 자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이상 물러나지는 않았다. 은영에게 길을 비켜주지도, 조금 더 거리를 두지도 않고 서서

말한다.

 

 "이 따귀는 널 유심히 관찰했던 대가라고 생각하면 되나?"

 "그리고 그걸 입 밖에 낸 대가야. 내 앞에서."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네가 범인일 거라는 내 생각이 맞는 거 같아서."

 

 은영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뗐다.

 

 "무슨 소리야? 애초에 그런 새벽에 다리털 같은 게 보일 리 없잖아. 그냥 날 압박하려고

한 소리 아니야?"

 "아니, 다리랑 골반이 너무 똑같아서 불빛이 생겼을 때 보였어."

 "웃기시네. 사람을 다리랑 골반만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있어. 상대가 남자일 때는 상당히 부정확해도 여자는 골반과 다리로 전부 구별 가능해."

 "…."

 

 '씨바, 할 말을 잃었슴다.'라고 은영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덧붙여서 구제불능의 변태라는

생각도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좋아.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내가 범인이라는 물증은 있어?"

 "있어."

 

 유랑은 핸드폰을 꺼내서 은영에게 들이밀었다. 은영은 무릎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여

핸드폰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이게 물증이라고?"

 

 아주 어두운 화면이다. 본 순간에는 무슨 장면인지 몰랐지만 이내 화면 안에 사람 한 명

이 서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서 있는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세상에 가장 흔하게, 강한 불빛을

낼 수 있는 물건은 핸드폰일 것이다. 다만 사진에 찍힌 건 그 사람의 뒷모습뿐이라서 불빛

에 제대로 비치는 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과 헐렁한 티셔츠뿐이었다. 다리나 골반은

뚫어져라 봐도 아른거릴 뿐이다.

 

 "다리털은커녕 다리랑 골반도 제대로 안 보인야, 야."

 "기계의 한계지. 내 눈이 카메라였다면 다 보였을 거야. 여자를 보는 눈만큼은 그 어떤

정밀기계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거든."

 "징그러워. 한 대 더 맞아야 정신 차리지?"

 "…."

 

 은영이 기울였던 몸을 다시 꼿꼿이 세웠다. 동시에 유랑은 핸드폰을 거둬갔다.

 

 "뭐, 범인 사진을 찍어둔 건 괜찮은데 나랑 그 범인을 동일인물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다

르지 않아?"

 "내가 보기에는 똑같아."

 "그건 네 입장이고요. 봐봐. 나랑 똑같은 부분은 잘 안 보여도 머리카락 같이 다른 부분

은 바로 보이잖아. 얘는 긴 머리, 난 단발."

 "내 눈에는 똑같은 부분들만 보여. 헐렁한 티셔츠 밖으로 살짝 드러난 어깨선 같이."

 "진짜 한 대 더 맞는다?"

 "…."

 

 은영이 한숨을 내쉰다. 언제 맞더라도 괜찮게 하려고 이를 꽉 물고 있는 유랑을 보자 답

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터졌다.

 

 "하, 원래 특이한 놈이란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 암적인 존재들의 적이라면서 현장에서는 숨어서 사진이나 찍고 있던 거야? 범인은

잡지도 않고?"

 "불량배들한테 몰리던 여자가 범인이 될 줄은 몰랐지. 결국은 이렇게 잡으러 왔지만."

 "내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나 봐?"

 "확신해."

 "증거는? 좀 전에 그 사진?"

 

 은영은 비웃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즐기는 것 마냥 흥겹게 답했다.

 

 "그건 이미 공개된 패고, 뒤집어 둔 패는…."

 

 유랑이 뜸을 들인다. 은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단 한 순간도, 한 부분도 놓치지 않겠

다는 듯이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쳐다본다. 하지만 은영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내 감이야."

 "최악이네."

 

 은영이 즉답한다.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실망감을 역력히 드러냈다.

 

 "엉터리라고는 해도 별명이 탐정이니까 어떤 추리를 할까 기대했는데 전혀 재미없어."

 

 한껏 비난을 받았지만 유랑은 개의치 않았다.

 

 "감이라고 해도 근거는 있지. 하나는 네가 졸려하는 것, 어제 늦게까지 깨어있었을 테니

당연한 거야. 그리고 오늘 아침, 기사에 나온 '김 모 씨'에 주목한 것, 이건 네가 범인이니까

목격자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거겠지."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비약이야. 말했잖아, 감이라고. 끝으로 넌 범인으로 의심받는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 않았어. 신체적 특징을 설명할 때는 뺨을 대릴만큼 화냈으면서 말이야."

 "화를 낼 필요도 없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소리니까."

 "그렇게까지 떳떳하면 경찰서라도 갈 수 있겠네."

 "하, 범인도 아닌데 뭐 하러 경찰서를 가?"

 "못 가?"

 "안 가. 일반인이 경찰서에 가는 게 이상한 거 아냐?"

 

 은영이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을 막는 유랑을 손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

아간다. 유랑은 은영을 막지 않았다.

 은영을 막는 대신 유랑이 손에 든 건 핸드폰이었다. 은영이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핸드

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개년이!」

 

 남자목소리였다. 풀석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욕설이 난무한다.

 은영이 발을 멈췄다.

 핸드폰에서는 계속해서 소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여자목소리였다.

 

 「하핫, 오빠들. 옆구리에 칼 꽂혔는데 괜찮겠어?」

 

 그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유랑과 대화하던 목소리와 판박이였다.

 유랑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사진은 찰캌 소리가 나니까 못 찍었어. 내가 찍은 건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야."

 "……."

 "경찰서, 가게 해줘?"

 

 유랑과 은영은 동시에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은영은 다시 한 번 계단을 내려가

기 시작했다.

 

 "재밌네. 꽤 하잖아, 탐정 나리."

 "지금 가면 후회할 걸?"

 "후회 따위 안 하는 성격이라서."

 

 은영이 자리를 든다. 유랑은 그 뒤를 따라붙으며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 말고도 요즘 있던 일들, 전부 네가 그런 거지?"

 "무슨 소리일까?"

 

 은영은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능청스레 대답한다.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다.

 

 "명암구에서 늦은 시간대에 일어났던 소동들, 전부 네 짓이냐고. 지나가던 사람들을 다치

게 하거나 금품 갈취한느 사건 말이야."

 "글쎄?"

 

 두 층 정도 내려가는 순간, 유랑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를 듣고 은영이

뒤로 돌았다.

 

 "배고프면 뭐라도 먹지 그래?"

 "배는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지 채울 수 있어."

 "내가 배고프거든."

 "입맛 없다며?"

 "그랬었나?"

 

 은영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남자인 유랑이 느끼기에도 빠르다고 생각

될 정도다.

 식사를 마친 이들이 하나둘씩 교실로 돌아오고, 그들을 뒤로 한 채 은영과 유랑은 걸어갔

다.

 

 "넌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해?"

 

 그런 말을 하며 유랑과 은영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간다.

 

=====================================================================================

 

 

 

추석 잘들 지내셨나요?

 

전 추석동안 잉여잉여하게 있다보니 글도 안쓰고... ㅋㅋ

 

이젠 다시 부지런히 쓰기 시작해야겠네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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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츄발론 - 모쿠야 [4]
신하
2013-11-15 1-0 871
1362 시 문학  
오랫만에 시 한 편.(제목은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3]
슛꼬린
2013-11-06 1-0 740
1361 창작  
그대는 여신을 믿고 있습니까? [프롤로그]:나의 몸은 고통속에서
사브리나
2013-11-06 0-0 849
1360 창작  
뒷골목의 일상 - 2장 (1)
한걸음더
2013-11-05 0-0 538
1359 창작  
[어마금/페스나/가히리/소아온/원피스- 팬픽] 대리인 전쟁.- 제 1장. 시작되는 부활.
‡사랑‡
2013-10-27 0-0 5427
1358 창작  
EAT OR BE EATEN - 2 [4]
아르크
2013-10-26 1-0 605
1357 창작  
EAT OR BE EATEN - 1 [6]
아르크
2013-10-19 0-0 605
1356 창작  
Fate/Future Avalon (시작의 장)-Ⅱ
N피오레
2013-10-09 0-0 673
1355 창작  
Fate/Future Avalon (시작의 장)
N피오레
2013-10-07 0-0 786
1354 창작  
Fate/Future Avalon 프롤로그 [1]
N피오레
2013-10-07 0-0 761
1353 창작  
문예부 - 1 [1]
아르크
2013-10-04 0-0 662
1352 창작  
뒷골목의 일상 - 1장 (4) [4]
한걸음더
2013-10-01 0-0 624
1351 창작  
[소아온 팬픽] <알비노> 3장 [2]
상쾌한오후
2013-09-28 0-0 766
1350 창작  
[소아온 팬픽] <알비노> 2장 [4]
상쾌한오후
2013-09-28 0-0 767
1349 창작  
[소아온 팬픽] <알비노> 1장 [8]
상쾌한오후
2013-09-28 1-0 1723
창작  
뒷골목의 일상 - 1장 (3)
한걸음더
2013-09-25 0-0 707
1347 창작  
어떤 과학의 무서운 비밀....(사텐최강설) [6]
Sa랑은어렵da
2013-09-19 3-0 3973
1346 창작  
BGM)츄발론 - 척스 [5]
신하
2013-09-18 1-0 903
1345 창작  
뒷골목의 일상 - 1장 (2) [2]
한걸음더
2013-09-17 0-0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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