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칭 + 대명사 (5) - 그림자 + 밟기
2011년 9월 23일 토요일 + 부산 망미구에 있는 산. 해발 357M.
오전 여덟 시 오십 분 + 숲 안에선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꺽……. 끄억……. 그어억…….”
놈의 왼쪽 눈에는 등산용 지팡이의 칼날이 깊이 들어가 있다. 그 밑으로 검은 피가 주르륵 배어 나온다.
고통스러운 모양인지 놈은 몸을 비비 틀고 있다. 남은 오른쪽 눈을 부릅뜬 채 날 향하고 있다. 그런데도 흰자위에는 핏발 하나 서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자 선영이는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진동모드처럼 덜덜 떠는 모습을 보는 건 확실히 유쾌한 일은 아니다.
“미안한데, 확실히 고정해서 찍어줄래?”
그녀가 덜덜거리는 턱을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난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나 더 들고 온 지팡이의 끝을 쭉 빼내고 놈의 미간을 향해 힘껏 찌른다.
“크릉!”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내며 놈은 지팡이를 피했다. 놈의 양팔은 참호 옆에 있는 나무에 족구장 네트로 단단히 묶여 있다. 다리는 이미 뼈가 박살 나 있어 움직이지 못 하니, 머리만 움직여서 피한 것이다.
“너, 주, 죽일 셈이야?!”
소리를 빽 지른 건 선영이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다.
“아니, 지금은 안 죽일 거야. 왜 그러는데? 살인이라고 말할 셈이야?”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저게 ‘사람’이 아닌 건 며칠 전에 잘 이해했으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할 지……이미 알고 있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녀가 들고 있는 핸드폰만큼이나 떨리고 있다.
“너……. 아무렇지 않아? 김연효.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널 닮은……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걸……고문할 수 있어?”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뜸을 들인다. 그렇다. 날 닮은 ‘이것’. 며칠 전에 이걸 처음 봤을 때는 날 죽이려 드는, 나와 똑같은 ‘이것’에게 증오심과 혐오감만이 가득했다. 오로지 날 죽이려고 하는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나’.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와 똑같이 생긴 것. 그것만큼 두려운 게 또 있을까.
“날 닮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야. 너도 마찬가지겠지. 만약 널 닮은 ‘그게’ 한 번 더 나온다면……. 됐다, 그만두자. 아무튼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건, 내가 사디스트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도플갱어물에 심취한 오타쿠라서도 아냐. 너도 알고 있잖아. 이놈들의 약점 같은 거라도 알아놔야 우리가 살아. 그러니까 아무 말 하지 말아줘. 나도…….”
아무 말 하지 말아줘. 나도…… 좆같거든. 끝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알았어.”
선영이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없어졌다. 그래, 저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아이처럼 생각하고, 거리낌을 느끼게 되겠지. 지금부터 내가 할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크르르……. 크으으!”
놈은 쇳소리를 내며 계속 나를 쏘아본다. 한 쪽 눈에 담겨있는 건 나를 향한 증오심일까, 살의일까. 둘 다일지도. 나는 손을 살짝 내민다.
“꺄악!”
비명소리는 내 것이 아니다. 머리 앞까지 손을 내밀자마자 놈은 바로 내 손을 물려고 한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손을 빼고, 녀석의 입이 벌어진 틈을 타 반대손으로 지팡이를 힘껏 꽂아 넣었다.
“캬아아악!”
지팡이 끝부분이 목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놈의 이……, 아니 이빨을 센다.
“하나 둘……, 대충 마흔 두 개군. 이빨은 마흔 개 이상. 사람보다 훨씬 많다.”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지팡이 손잡이를 발로 힘껏 차 버린다. 지팡이의 끝이 놈의 목 뒤를 뚫고, 참호 벽을 이루는 모래주머니에 꽂힌다.
“갸으윽…….”
아직 살아 있다. 전혀 투지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는 허리춤에 찔러둔 망치를 꺼낸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선영이가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눈 감아.”
이 말은 딱히 누구에게 한 말은 아니다. 둘 다 해당될지도.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나는 놈의 턱을 향해 두 손으로 망치를 잡고 힘껏 휘두른다.
퍽. 꼭 높은 곳에서 우유팩을 떨어뜨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검은 피와 함께 이상하리만치 하얀 이빨들이 쏟아져 나온다.
“갸아아악…….”
어쩐지 비명소리가 좀 잦아든 것 같다.
“이빨의 강도는 사람에 비해 높은 것 같음. 둔기가 아닌 주먹이나 발로는 손상을 시키기 힘들어 보인다.”
이것은 동영상의 기록을 위해 하는 말이다. 나는 곧바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판잣집에서 가지고 온 방수포를 놈의 머리에 씌운다. 상처를 입힌 왼쪽 눈가 주변은 벗어나게끔.
“인간과 마찬가지로 눈에 상처를 입으면 시력을 상실하는 것 같음.”
등산용 지팡이는 두 개다 놈의 몸에 꽂혀 있기에, 대용으로 가져온 긴 우산의 끝부분을 놈의 오른쪽 눈을 겨냥하고 찌르는 시늉을 했다. 놈은 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손을 내밀어 본다. 그러자 곧바로 방수포를 찢고 하얀 이빨들이 드러난다.
“후각이 무척 뛰어난 것 같다.”
“야, 김연효…….”
뒤를 돌아보니, 선영이는 거의 울먹이고 있다.
“그만해……. 이제 그만. 제발…….”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가져간다.
“알았어. 잠시 뒤 좀 돌아보고 있어.”
지팡이 두 개를 빼내야 하니까. 선영이가 몸을 돌리자, 나는 곧바로 왼쪽 눈과 목에 꽂혀 있는 지팡이를 뽑아내었다. “크르…….” 아까보다 확연히 작아진 울부짖음과 함께 눈알과 살점이 묻어 나온다.